파리 공항의 사인을 위해 만든 서체 프루티거는 1976년 프랑스에서 에이드리언 프루티거에 의해 탄생되었습니다. 프루티거는 유니버스와 헬베티카를 넘어서는 새로운 산세리프 서체의 개발이라는 목적에 의해 탄생되었습니다. 에이드리언 프루티거는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스위스 태생의 서체 디자이너며, 산세리프 서체로 유니버스, 아브니르, 세리프 서체로 메리디언 등을, 슬랩 세리프 서체로 세리파, 글리파, 모노 스페이스 서체로 OCR-B 등을 디자인 했습니다. 한 국가에 대한 경험은 그 영토의 첫 관문인 공항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공항에 도착하면 모든 감각기관은 민첩하게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하게 되는데, 일반적으로는 낯선 언어가 들리고 풍겨 오는 냄새도 다르기 마련입니다. 눈에 들어오는 정보는 모두 기호가 되어 도착한 지역의 사회·문화·경제적 특수성을 인지할 수 있는 단서가 됩니다. 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공항에 도착한 순간, 방문자를 맞아 주는 공항의 사인(sign)은 프랑스적 디자인의 단서가 되어 디자이너들을 설레게 합니다. 주목성과 가시성, 가독성 기능이 우선하는 국제공항 사인 디자인에 노란 바탕에 짙은 회색 글자라는 부드러운 배색이 사용된 점도 그렇지만 사용된 서체가 간결한 형태의 산세리프 서체이면서도 둥글고 개방적인 특성을 지녀 한결 여유 있는 감성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인상적 입니다. 바로 이 서체가 스위스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20세기의 탁월한 서체 디자이너, 에이드리언 프루티거가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의 사인 시스템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한 서체, 프루티거(Frutiger) 입니다. 프루티거는 1975년 개항과 함께 처음 선보였을 때 샤를 드골 공항이 위치한 지역 이름이자 이 공항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한 루아시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대부분 특수한 목적을 위해 디자인된 서체가 그렇듯이 공개된 지 1년 후 서체 회사를 통해 디자이너들에게 상용화되었을 때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에이드리언 프루티거는 이미 1950년대에 헬베티카보다 더 간결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는 산세리프 서체 패밀리, 유니버스(Univers)를 디자인했습니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파리의 새로운 공항의 사인을 위한 서체 디자인을 의뢰 받았을 때 그가 생각한 디자인의 방향은 첫째 읽기 쉬운 산세리프 디자인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당시 유행이 시들어 가는 유니버스나 헬베티카를 넘어서는 새로운 산세리프 형태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새로운 공항의 특징적 건축 형태인 곡선미를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영감을 고전적인 로마 시대 명각 글씨에서 찾아 이를 유니버스의 골격에 접목시켰으며 유니버스, 헬베티카와 다른 제 3의 산세리프 서체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프루티거 대문자의 E, F, L, S 등이 다른 글자에 비해 폭이 좁은 점이나 대문자 C, S와 소문자 a, c, e, s 등의 열린 부분이 넓어서 시원한 속 공간을 보유하는 점 등이 고전적 명각 글씨의 영향을 보여 주는 등 이러한 개별 글자들의 특성이 모여 서체 전체의 인상을 보다 개방적이고 부드러운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고안들은 사인을 위한 글자라는 기능을 충족시키기도 했는데 프루티거의 어센더 디센더가 비교적긴 점, 자간 폭이나 모양이 서로 다른 점 등은 글자 식별을 더욱 좋게 하여 가독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프루티거는 공항이라는 공간을 넘어서 또 다른 스위스 출신의 동시대 디자이너인 장 위드메르가 진행한 프랑스 관광청과 도로교통국의 고속도로 사인 서체로 채택되기도 했습니다. 산세리프 서체에 세리프적 특성을 접목하는 아이디어를 실현한 조형적으로 우수한 서체들은 에릭 길의 길 산스를 기점으로 헤르만 자프의 옵티마, 한스 마이어(Hans Edouard Meier)의 신택스 등 수십 년 간격으로 있어 왔습니다. 1970년대에 이러한 휴머니스트 산세리프의 유행이 다시 시작되었으며, 네오 그로테스크 양식과 절충하여 등장한 새로운 산세리프 형태가 바로 프루티거였습니다. 공항의 사인을 위한 서체로 탄생한 프루티거는 20여 년 동안 여러 매체의 디자인에 현대적 표현을 주는 서체로 사용되면서 유행을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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