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마는 1958년 독일 스템펠사의 헤르만 자프의 의해서 탄생되었습니다. 옵티마는 세리프 서체의 특징적 형태의 비례를 택한 산세리프 서체입니다. 옵티마를 만들어낸 헤르만 자프는 독일의 서체 디자이너이자 북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입니다. 세리프 서체로 이전의 포스팅했던 팔라티노, 멜리어, 자프 챈서리가 있고, 스크립트 서체로는 자피노 등 수십개의 독창적 서체를 디자인하였습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건립할 베트남전 기념비 공모전의 당선작이 발표되었을 때 이는 큰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우선 당선자는 기성 건축가가 아닌 예일 대학 건축과에 재학 중이던 중국계 여학생 마야 린이었습니다. 당선작은 기념비에서 흔히 기대할 수 있는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상징물이나 동상 등이 계획되지 않은 매우 미니멀한 검정색 화강석 벽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심사위원단이 만장일치로 이 안을 선정한 이유는 그 콘셉트의 휴머니즘 때문이었습니다. 마야 린은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 하나 하나를 기념비에 표현하고자 했고, 화강석 벽에 전사한 5만 8000여 명 병사의 이름을 새겨 넣어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고자 했습니다. 5만 8000여 명의 이름을 조직하는 방법은 전사한 날짜순이었는데, 이 또한 마야 린의 디자인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스미스라는 이름의 전사자가 수백 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나에게 소중했던 스미스를 전화번호부 목록에서 찾는 듯한 경험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기념비에 새겨진 이름을 찾기 위해서는 알파벳 순으로 조직된 별도의 책에서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개개인의 삶과 국가에 헌사한 영혼을 존중한다는 디자이너의 콘셉트를 구현한 결정이었습니다. 베트남전 기념비 디자인에서 이렇게 중요한 요소인 이름은 옵티마 (optima)라는 서체로 새겼습니다. 검정색 화강석의 모던한 구조물에 담아내는 휴머니즘의 표현에 옵티마의 선택은 매우 적절했습니다. 우선 옵티마는 돌에 새긴 글자 모양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옵티마의 대문자는 로마에 남아 있는 트라야누스 황제 기념비에 새겨진 글자 모양과 비례를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E, F, L 등 좁은 폭의 글자와 G, O 등 넓은 폭의 글자가 보여 주는 글자 폭의 가변성이 이를 증명하며, 이는 기계적인 것과는 상반된 자연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옵티마는 이렇게 전통적 형태에 기반을 두지만 세리프가 없는 현대적인 모습입니다. 세리프를 거두어 내는 대신 획이 시작되고 끝나는 부분을 약간 굵게 처리하여 세리프가 있는 것과 같은 또렷한 인상을 줍니다. 보통의 산세리프 서체가 획의 굵기가 일정한 것과는 달리 굵기의 차이 또한 존재합니다. 이러한 형태적 고안을 통해 옵티마가 제시하는 이미지는 모더니즘과 휴머니즘이 접목된 모습입니다. 옵티마는 팔라티노(palatino)를 디자인한 독일의 서체 디자이너 이자 북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인 헤르만 자프의 3대 서체인 팔라티노, 멜리어, 옵티마 중의 하나로 헤르만 자프 자신이 최고로 손꼽는, 그의 가장 독창적인 디자인 서체입니다. 헤르만 자프는 전통적 캘리그래피와 로마 르네상스 시대의 명각 글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옵티마의 영감이 되었던 것은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Santa Croce) 성당에 안치된 무덤의 비석에 새겨진 글자였다고 전해집니다. 세리프가 없는 당시의 명각 글씨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몇 년 후, 그의 표현에 의하면 세리프 없는 로만 서체 디자인을 발표한 것입니다. 옵티마는 세리프적 성격에 기반을 둔 산세리프 서체이므로 세리프 서체와 편안한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본문용 서체로 사용해도 가독성이 있는, 장점이 많은 아주 잘 만들어진 서체 입니다. 그야말로 그 이름처럼 최선의 선택이 만들어 낸 최적의 서체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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