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돈 스타일은 Didot + Bodoni를 의미하며 세리프는 굵은 수직 기둥과 가는 가로획이 브라켓 없이 직각으로 만나며, 헤어라인 세리프라 부를 정도로 가늡니다. 획의 굵기는 굵기의 차이가 가장 크며 글자의 축은 둥근 글자의 가는 부분을 연결하는 축은 수직입니다. 글자의 폭은 차이가 크지 않으며 원의 형태에 가까워 볼 터미널이라 부르는 획의 마무리를 가집니다. 그리고 둥근 소문자의 열린정도가 좁습니다. 서체 디도와 보도니에서 볼 수 있는 형태적 특징이 이 양식을 대변합니다. 18세기 말경 각기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출현한 이 새로운 형태에 영향을 미친 것은 역시 1700년경 프랑스에서 디자인된, 수학적 미감을 주는 왕의 로만이었습니다. 디돈 양식은 가는 가로획과 굵은 세로획이 세리프 없이 직각으로 만나고, 글자의 모양이 기하학적 형태에 바탕을 두며 비례는 수학적으로 고련된, 펜글씨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진 서체 양식입니다. 디돈 스타일의 출현과 인기는, 가는 회고가 또렷한 대비를 표현할 수 있었던 당시 전반적 인쇄술의 발달과 시대 미의식의 변화에 힘입어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디돈 양식의 전형적 서체로 디도와 보도니 외에도 발바움 페니스 등이 있습니다. 이중에서 보도니는 1970년 이탈리아 파르마에 잠바티스타 보도니에의 탄생하였습니다. 발달한 인쇄술에 힘입어 등장한 극단적 굵기 대비와 수학적 비례미의 서체입니다. 잠바티스타 보도니는 로마와 파르마에서 왕성하게 활동한 활자 조각가이자 인쇄가로 다양한 양식의 수백 개 서체를 디자인했으며 파르마의 보도니 미술관에 그가 조각한 서체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서체 중에는 몇 글자만 늘어놓아도 강한 인상을 풍기는 향기 짙은 부류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보그 바자 등의 패션 잡지 제호로 오랫동안 애용되고 있는 보도니 서체입니다. 세리프 서체에서 느낄수 있는 고적전 아름다움과 산세리프 서체가 줄 수 있는 군더더기 없는 명료함을 동시에 구현하는 이 서체의 스타일 영역이 그만큼 크고 대범하기 때문이 아닐까. 보도니느 이탈리아 파르마의 서체 디자이너 잠바티스타 보도니가 18세기 후반에 디자인한 그의 첫 독창적 서체입니다. 잠바티스타 보도니는 주로 프랑스에서 수입된 피에르 시몬 푸르니에의 서체와 인쇄 장식 등을 모방했으나 형태적으로 진일보한 디자인으로 타이포그래피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보도니의 극대비적 형태에 영향을 미친 것은 1700년경 프랑스에서 디자인된, 왕의 로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모방하던 푸르니에의 서체들이 바로 이 왕의 로만을 모델로 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보도니는 가는 가로획과 굵은 세로획이 직각으로 만나고, 글자의 모양과 비례가 수학적으로 고려된, 새로운 미의식이 유럽에 도래함을 보여주는 서체였습니다. 머리카락같이 가는 세리프와 굵은 획의 극닥전 대비는 당시 전반적으로 발달한 인쇄술 활자 조각 도의 발달, 표면이 매끄러운 종이 제조 기술, 광택 있는 잉크 등에 힘입어 가능했습니다. 보도니는 프랑스 대혁명 후 변화한 시대에 걸맞는 형태적 참신함으로 19세기까지 널리 쓰였으나 본문용 서체로서 가독성의 문제, 유럽의 전반적 인쇄 수준의 저하로 말미암아 점차 인쇄물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미국과 유럽의 주요 활자 주조소에서 보도니를 재현해 냈으며, 이들 대부분이 현재 디지털 폰트로 그 맥을 이었습니다. 그중 본래 보도니의 형태와 정신이 가장 잘 재현된 폰트는 1924년 독일의 바워사에서 되살린 보도니로, 획의 굵기 간 강한 대비와 우아한 글자의 디테일들이 살아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보도니는 강한 시각적 인상 덕분에 제목용 서체로 사랑받아 왔지만 활자의 굵기 대비가 눈을 피곤하게 하는 단점 때문에 장문의 텍스트에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는 도전이 1990년대 미국 폰트 회사들에 의해 시도되었고, 1994년 미국의 ITC사는 제목, 본문, 캡션 등 여러종류의 텍스트로 만들어진 문서 작업에 통일된 목소리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보도니 72, 보도니 12, 보도니 6라는 폰트 패키지를 내놓았습니다. 보도니 72는 제목의 사용에 돋보이도록, 보도니 12는 본문의 사용에 적합하도록, 보도니 6는 캡션이나 작은 글자로 이루어진 텍스트에서 가독성이 있도록, 크기에 따라 활자의 굵기와 대비를 손본 것입니다. 1996년 캘리포니아를 기반으로 한 실험전 폰트 회사인 에미그레사 역시 보도니의 특징적 글꼴을 유지하면서 굵기의 차이를 줄여 본문용으로 가독성이 있는 서체를 필로소피아라는 이름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 서체에서 본래 보도니의 특성은 매우 밋밋해졌습니다. 20세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에서 보도니가 지닌 카리스마를 자신들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로 삼은 디자이너들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우선 러시아 출신으로 30년대의 유럽의 모더니즘을 미국의 디자인계에 전해준 알렉세이 브로도비치가 있습니다. 브로도비치는 1934년부터 20년 이상 패션잡지 하퍼스바자의 아트디렉터로 일하는 동안 사진 이미지, 서체, 여백의 혁신적 지휘를 통해 당시 편집 디자인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습니다. 특히 모더니스트로서 여백을 적극적 형태 요소로 활용하고 강한 대비 화면을 창조하기 위해 뚜렷한 인상의 보도니를 그의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의 주역을 삼았습니다. 그 외에 디자인 전 영역에 걸친 문제를 해결하기로 유명한 비넬리 디자인니나 셔마이에프 앤 가이스마 등의 디자인 회사 포트폴리에서도 보도니로 해결된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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