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게라몬드가 있었다면 영국에는 캐슬론이 있다. 캐슬론은 1725년 영국 런던에서 기존에 의존하던 단조로운 네덜란드 로만 서체를 대체한 독특한 형태 질감과 가독성을 위에 영국의 활자 조각가이자 주조가인 윌리엄 캐슬론에 의해 탄생하였습니다. 타이포그래피는 보이는 말이자 목소리이기 때문에 문학가들이 자신의 글에 부여하는 형상, 즉 타이포그래피에 민감한 것은 그들은 예술적 감수성을 고려할 때 매우 당연하다 할 수 있습니다.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로 각색된 피그말리온 등의 희곡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 (G. Bernard Shaw, 1856~1950)는 서체를 매우 의식하는 작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글이 출판될 때마다 인쇄 견본을 감독했고, 특히 캐슬론 서체로 조판되어야 한다는 것을 무척 고집하였다고 합니다. 캐슬론은 이렇듯 영국인에게 무척 친숙하고 사랑받아 온 영국을 대표하는 로만 서체입니다. 캐슬론을 만든 윌리엄 캐슬로(William Caslon, 1692~1766)은 본래 총기 등을 장식하는 금속 세공업자였습니다. 그는 1720년, 영국 런던에 화자 주조소를 설립하고 그로부터 5년 후, 네덜란드 로만 서체를 모델로 캐슬론 서체를 만들었습니다. 인쇄술이 전해진 것은 15세기 후반 무렵이나, 오랫동안 영국의 인쇄업계는 서체나 서적 디자인 등에서 대륙의 유행, 특히 영국 해협을 통해 수입된 네덜란드의 그것에 매우 의존했습니다. 캐슬론 역시 게라몬드 등 프랑스에서 수입한 서체를 자신들의 요구와 미감에 따라 발전시킨, 가독성 높은 네덜란드 로만 스타일에 기반을 두었으나 윌리엄 캐슬론이 금속 세공의 기술을 살려 새로운 폰트(Font)에 부여한 다양하고 풍부한 형태와 디테일은 네덜란드 서체와 차별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기존의 본문용 서체보다 굵은 획과 강한 텍스쳐로, 시각적 개성이 뚜렷해 가독성 있는 서체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캐슬론은 당시 대륙에 유행하던 가늘고 섬세한 서체 양식과는 상충하는 것이었지만 급성장하는 영국의 인쇄 수요를 충족시키며 19세기까지 꾸준히 영국의 대표 서체로 사용되었습니다. 캐슬론은 영국의 제국주의와 함께 세계 곳곳에 전파되었고, 북미 대륙에 전해지면서 한동안 미국 인쇄물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또한 1776년 벤저민 프랭클린이 인쇄한 미국의 독립 선언문에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서체로서 캐슬론의 매력은 개별 서체의 조형성에서보다 텍스트가 되었을 때 더욱 드러납니다. 다소 굵은 획과 개별 글자의 완벽하지 못한 비례, 조금 덜 세련되어 보이는 디테일들이 모여 이루어 내는 질감은 강한 시각적 인상과 생동감을 줍니다. 캐슬론만의 이러한 개성은 최근의 디지털 폰트화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글자 특성이 고르게 정리되는 경향에 의해 원래의 디자인에서 무척 멀어졌습니다. 그러나 1990년 어도비(Adobe)사에서 캐럴 트웜블리(Carol Twombly)가 되살린 어도비 캐슬론(Adobe Caslon)은 가장 정확하게 재현해 낸 현대판 캐슬론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캐슬론은 생동감 있는 질감과 우수한 가독성 덕분에 현재까지 잡지 등의 본문용 서체로 빈번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예로는 팬타그램이 1992년 영국에서 디자인한 디자인한 킹스 컬리지 아이덴티티 디자인에 사용되었으며, 같은 해인 1992년 영국에서 Re Approcahes의 발췌한 글과 자신의 노트를 타이포그래피로 재구성한 작품 로열 컬리지 오브 아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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